글은 지겨워 말로 하련다

개인방송이 뜨고 있다. 이른바 블로그의 오디오화. 음악이나 스포츠 얘기를 글 대신 MP3 파일로 녹음해 올린다. 청취자들은 언제든 들어가 파일을 열고 들으면 된다.


연세대 화학공학과 3학년 박준호씨는 지난 2월 글과 사진만을 올리는 자신의 블로그가 지겨워졌다. 뭔가 새로운 것을 찾다가 블로그를 통해 방송을 해 보기로 결심했다.

박씨는 MP3 파일로 음악과 여담을 섞어 만든 방송을 블로그에 올렸다. 가수 신해철의 음악과 오페라 아리아 특집 등 다양한 소재로 꾸몄다. 자비 150만원을 들여 SM-58 마이크, 베링거 BCA-2000 믹서 겸 오디오카드 등 전문장비도 구입했다.

반응은 뜨거웠다. 청취자들은 MP3파일을 내려받아 자신들의 홈페이지에 옮겼고, 이들의 홈페이지에 들어오는 친구들은 다시 파일을 퍼 날랐다. 사연과 신청곡이 블로그에 쌓였고 청취자와 함께 방송을 제작하기도 했다. 방송 시작 넉 달 만에 200여 명의 고정팬도 생겼다.

블로그의 '오디오화(化)'가 시작됐다. 블로그 열풍이 일반인을 '기자'나 '평론가'의 자리에 올려놨다면, 블로그의 오디오화는 일반인도 라디오 프로듀서가 되는 길을 열고 있다. 미국.유럽 등지에서 애플사(社)의 MP3 플레이어인 '아이팟(iPod)'과 '브로드캐스팅(방송.broadcasting)'을 합친 '팟캐스팅'이라 불리는 이 개인방송이 국내에서도 서서히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팟캐스팅의 전도사를 자처하는 김호근 팟캐스트(www.podcast.co.kr) 운영자는 "현재 50명 정도가 팟캐스팅 방송을 하고 있으며 청취자는 수천 명에 이른다"며 "팟캐스팅을 통해 다양하고 개성 있는 프로그램이 양산될 것"이라고 말했다.

프로그램의 종류는 천차만별이다. 음악방송이 가장 많지만 좋은 책을 소개하고 책 내용을 일부 발췌해 읽어주는 블로그, 토크쇼 형식으로 야구.농구 등의 스포츠 해설을 진행하는 곳도 있다.

가수를 꿈꾸는 채경완씨는 자신의 블로그를 방문하는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최근 음반을 발매했다. 노래를 잘하는 사람은 노래를, 비디오에 재능이 있는 사람은 뮤직비디오 찍는 작업을 도와줬다. 채씨는 "팟캐스팅은 나와 블로그 방문자들의 상호 작용을 글로 쓸 때보다 훨씬 용이하게 한다"며 "서로 친구처럼 생각하고 오프라인에서도 자주 만난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인터넷 방송은 일부 포털사이트를 중심으로 이뤄져 왔으나 방송자와 청취자 사이의 상호 작용이 원활치 않았다. 대부분 방송이 생방송인 데다 하루 한두 시간에 불과해 일상에 바쁜 청취자들이 방송 시간에 맞춰 컴퓨터 앞에 앉기가 어려웠기 때문. 반면 팟캐스팅의 청취자는 원하는 시간에 방송자의 블로그에 접속해 방송을 듣고, MP3파일로 내려받아 나중에 들을 수도 있으며, 직접 방송에 참여할 수도 있다.

최근 MP3자회사인 블루텍을 재합병한 삼성전자도 팟캐스팅을 마케팅에 적극 활용할 방침. 이동수 블루텍 경영지원팀 차장은 "MP3 용량이 커져 웬만한 팟캐스팅 방송을 다운받아 듣는데 아무 문제가 없다"며 "MP3 플레이어 용도를 다양화하는 방법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팟캐스팅을 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MP3파일로 방송을 녹음해 스트리밍 서버, 웹하드, 자신의 블로그 등지에 올려놓으면 된다. 자세한 설명은 해당 블로그에서 찾을 수 있다. 관련 사이트가 늘어나면서 서버 용량이 문제가 될 수도 있다는 지적도 있다. 일반 블로그와 달리 팟캐스팅은 MP3에 기반을 둬 차지하는 용량이 크다. 노래 한 곡은 3~4M(메가바이트)에 불과하지만, 10분 동안 얘기할 경우 10M에 달한다. 채경완씨는 "팟캐스팅 전문 서버를 운영하는 곳이 생겨 대용량으로 사이트를 운영하는 데 무리가 없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저작권 문제도 해결 사항이다. 문화관광부 저작권과 최명기 위원은 "방송에 사용된 음악에 대한 사용료나 보상금을 지불하는 게 옳다"고 지적했다. 박준호씨는 "직접 구입한 CD를 이용하고, 스폰서도 없는 비영리 행위이기 때문에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