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노래자랑 .
늦은 저녁을 먹고 , 블로그질을 하고 있자니 옛날 생각이 스멀스멀 기어올라왔다 . 그때가 낭만 해적단이 부산 장기 공연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이니 , 아마도 작년 늦여름이나 초가을쯤이었던 듯 . 그때는 해적단 멤버 모두가 경제적으로도 힘든 상태였다 . 공연 때문에 부산에 한달가량을 체류해있었는데 , 장기 공연이 끝나고 나서 공연 관계자는 수고비를 지불하지 않고 잠적해버린 것이다 . 결국 우리는 자기 돈 써가며 한달간 부산관광을 한 셈이 된거다 .
그 시기에 '양치질' 의 뮤직비디오가 완성이 되었다 . 작업 의뢰는 물론 돈 떼어먹히기 전에 한거라 의뢰할 당시에는 걱정이 없었다 . 부산 공연이 끝난 후 출연료를 받으면 그 돈으로 뮤직비디오의 제작비를 주면 만사 오케이일거라고 생각했으니까 .
근데 출연료를 떼먹힐줄 , 그 누가 예상이나 했을까 .
제작비를 지불하기로 약속한 기일은 이미 한참이나 지났고 , 제작사와 통화해서 현재 사정을 이야기하며 기한을 미뤄달라 앵벌이 멘트를 날릴수도 없으니 . 게다가 그 당시엔 대장도 학교 때문에 출국해있었고 , 진우와 현아 모두 학생이었다 . 그리고 나도 가난한 월급쟁이였다 .
매일 매일 돈 걱정때문에 한숨만 쉬는 나날이었다 . 가진 물건을 팔자니 돈 될만한 물건이 없고 , 친구들에게 돈을 빌리자니 가오 때문에 약한 소리 할수도 없고 , 집에 손 벌리는 성격도 아니고 .
그러던 어느 날 , 볼일이 있어 읍내에 나갔다가 집으로 돌아가려고 마을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와중에 '그것' 이 눈에 확 들어왔다 . 그건 바로 버스에 붙어있던 전국노래자랑 예심을 알리는 광고지였다 . 1등 상금이 농산물상품권 100만원 . 상품권 매입업체에 상품권을 판다해도 뮤직비디오 제작비는 다 지불할만큼의 돈을 받을수 있을 터였다 .
… 어지간해선 난 그런 감 따위는 믿지 않지만 , 이건 마치 하늘이 내게 준 기회같았다 . 그것도 아주 시기적절한 .
예심날짜가 다가왔다 . 예심에서 어떤 노래를 불러야 할까 , 고민은 길지 않았다 . 사미인곡 . 젊은이들과 꼰대들 모두를 아우를수 있는 선곡이었다 . 실제로 만족을 모르는 우리 아버지는 내가 노래방에서 이 노래를 부르는걸 듣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올리기도 했었으니까 . 선곡까지 하고나자 점점 자신감이 늘어만 갔다 . 숨겨진 조력자의 기를 받고 있는 느낌이었다 .
예선날의 아침이 밝았다 . 평소와 다름없이 외출하는 척 집을 나섰다 . 집에는 물론 전국노래자랑 예선을 보러나간다느니 따위의 말은 하지 않았다 . 첫번째 이유는 부모님이 응원온다고 할게 뻔했기 때문이고 , 두번째 이유는 어쩐지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
예선하는 곳에 도착하자 수많은 인파가 눈에 들어왔다 . 이 좁디좁은 촌구석 어디에 사람이 이렇게 많이 짱박혀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사람이 많았다 . 조심스럽게 두리번거리니 다행히도 내가 아는 사람은 눈에 띄지 않았다 .
한명씩 차례차례 무대에 나가 노래를 하기 시작했다 . 한명당 1분 사이에 당락이 결정되었다 . 구경꾼들은 그때마다 폭소를 일으키기도 하고 탄식을 내뱉기도 했다 . 예선을 보러 온 사람들의 수준과 심사위원들의 왔다갔다하는 심사기준을 어림잡아 평균을 냈을때 나는 꼭 합격일것 같았다 .
한시간 반정도 시간이 지나고 내 차례가 되었다 . 무대에 올라가서 보니 구경꾼만 세도 200명은 족히 되어보였다 . 긴장은 별로 되지 않았다 . 날 응원하러 온 사람도 없고 날 아는 사람도 없기 때문에 .
무대에 올라가자마자 간단하게 인사 정도만 하고 우렁찬 목소리로 노랫가락을 뽑아냈다 . 여태까지 탈락한 사람들의 문제점이 무대에서 너무 얼어있었다는 점을 감안해 무대에서 내려와 관객들의 앞을 여유있게 지나가며 노래하는 모습까지 보였다 .
1절의 반도 부르지 않았는데 심사위원이 기분좋은 목소리로 합격을 외쳤다 . 구경꾼들은 내 합격에 환호하진 않았지만 대신 객석엔 작은 술렁임이 있었고 여기저기서 작은 목소리로 '노래 진짜 잘한다' 라고 말하는걸 , 난 무대에서 내려오면서 똑똑히 들었다 .
이제 겨우 1차 예선을 통과한것 뿐이었다 . 남은 사람들의 존폐 여부가 결정되어야 2차 예선이 진행될터였다 . 무대 뒤 대기실에서 2차 예선을 기다리고 있는데 양복입은 아저씨 한무리가 20대에서 30대 초반 사이로 보이는 여성들에게 일일이 명함을 돌리며 뭔가를 설명하고 있었다 . 알고보니 그 지역 연예인 협회에서 나온것이었다 . 주말마다 노래자랑을 주최하곤 하니 참가하기를 바란다는 내용이었다 . '어디어디 연예인 협회' 라고 쓰여진 명함을 받고보니 피식 웃음이 나왔다 . 난 비록 무명이긴 하지만 일단은 가수인데 , 연예인 협회에서 명함을 받다니 . 하긴 그렇게 생각하면 노래자랑도 출전하면 안되긴 하지만 .
2차 예선을 기다리며 2차 예선에서 부를 노래를 고민했다 . 사실 1차 예선에서 불렀던 노래를 그대로 불러도 되지만 , 심사위원 중 한명이 내가 합격된후 날 불러 2차 예선때는 곡을 바꿀것을 권했다 . 2차에선 좀 더 신나는 노래를 했으면 한다는 조언이었다 (물론 이때도 '노래는 무척 잘한다' 는 수식을 빼지 않았다) .
뭔가 내가 노래방에 갈때마다 신나게 불러제끼는 노래가 있었는데 그게 뭐였는지 기억이 당최 나질 않았다 . 친한 친구에게 연락해볼랬더니 연락이 되질 않는다 . 고심고심하던 끝에 '하늘에서 남자들이 비처럼 내려와' 라는 곡이 생각이 나서 그걸로 하기로 결정하고 몇분간 가사를 떠올리며 연습을 했다 . 물론 그 곡은 내가 노래방에 갈때마다 신나게 불러제끼긴 하지만 그 곡이 1순위는 아니었다 . 뭔가 다른 곡이 있었지만 생각이 나지 않아서 결국 그것으로 결정한 것이다 .
2차 예선을 기다리며 담배를 몇가치를 태웠는지 모르겠다 . 시간 죽이는건 너무 힘이 들었다 . 그때 엄마 생각이 나서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 전국 노래자랑 예선을 보러 왔는데 1차 예선은 붙었고 이제 2차 예선을 기다리고 있다는 내용을 전했더니 엄마는 호호 웃으면서 혼자 그런걸 하러 간게 용하다고 , 배짱 좋다며 웃었다 . 나도 따라 웃긴 했지만 사실 별로 웃을 기분은 아니었다 .
2차 예선이 진행되었다 . 내 순서는 참가자들중 중간쯤 되었다 . 이번엔 1차때와는 다르게 약간 긴장이 됐었다는 점을 부인할수 없겠다 . 어찌되었든 출연할수 있느냐 마느냐가 결정되는 Final round 니까 .
내 차례가 왔다 . 이번은 1차 예선때처럼 무반주가 아니었는데 , 내 곡명이 전달되자 엔지니어는 그 곡을 찾느라 약간 헤매는 듯한 모습이었다 . 어찌됐든 곡이 흘러나왔고 무대위에 홀로 서있는 나는 노래를 하기 시작했다 . 여전히 무대 옆에선 심사위원 두명이 치켜뜬 눈으로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
어찌 노래가 끝났는지는 잘 기억이 안 나는데 그 상황은 또렷이 기억이 난다 . 여태까지만 해도 시장통을 연상시킬 정도로 시끄러웠던 객석은 내가 노래를 시작하자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 관객들은 넋나간 표정으로 나만 바라보고 있었다 . 그리고 내 노래가 끝나자마자 장마철 양철지붕에 쏟아지는 빗소리같은 , 커다란 박수소리가 쏟아졌다 . 그리고 1차때의 웅성거리는 소리는 보다 더 커졌다 .
만족스러웠다 . 이제 나는 심사결과 발표만 기다리면 되는 거였다 . 누가 뭐라해도 이 기회는 하늘이 나에게 준 기회 아닌가 .
2차는 1차와 다르게 참가자들의 순서가 모두 끝난 후 심사위원들과 스탭들간의 회의를 거쳐 결과가 발표된다 . 나는 또 다시 바깥에서 남은 참가자들의 차례를 기다리며 수없이 담배를 피워댔다 .
결과발표가 있으니 참가자들은 모두 모이라는 외침에 안으로 이동했다 . 심사위원들은 합격한 사람을 한명씩 호명하기 시작했고 .
그 중에 내 이름은 없었다 .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 허무하지도 , 속상하지도 , 억울하지도 않았으며 심지어 배고프지도 졸립지도 않았다 . 그저 가방을 챙겨 일어서서 그곳을 빠져 나오려는데 , 아까 1차 예선이 끝나고 조언을 해주었던 심사위원이 날 부른다 .
"아 … 이거 진짜 아쉽게 됐네 … 사실은 우리가 아까 회의할때도 고민을 많이 했었어요 . 노래는 정말 잘하는데 , 개인기랄까 … 뭔가 보여줄만한게 없어서 , 노래는 진짜 아까운데 말야 !"
… 그러고보니 1차 예선때 , 양손으로는 배구공을 돌리고 입으로는 탁구공 두개를 저글링했던 아저씨가 있었지 .
"노래를 진짜 잘하는데 … 혹시 가수하고 싶거나 그런 생각이 있으면 지금처럼 계속 노력하는것도 좋겠네 . 아 이거 진짜 아까운데 … 자 , 암튼 오늘 수고했고 … 화이팅 !"
"… 수고하셨습니다 ."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를 타려 정류장까지 걸어가는데 , 이상하게 자꾸 헛웃음이 나왔다 . 길거리에서 혼자 웃는 짓은 드라마같은데서나 많이 나온 , 너무 작위적인 행위라 엄마와 통화를 하며 웃음을 다 토해냈다 . 엄마 , 나 2차에서 떨어졌어 . 그래 , 아쉽게 됐네 , 얼른 들어와라 , 맛있는거 해줄께 .
결국 뮤직비디오 제작비도 날아가고 , 내 손에 남은 것은 이 지역 연예인협회 명함 한장 뿐이지만 그 날 밤은 바람이 참 시원해서 기분이 좋았다 .
그 뒤로 몇 주후 , 난 내 월급으로 제작비를 모두 지불했으며 그에 따라 심각한 경제적 공황상태가 장기지속될 전망이었지만 마음은 가벼웠다 . 그것 역시 내가 뭔가를 시도했다는 점 때문이었다 . 책임을 지겠다는 명목으로 '가수가 전국 노래자랑 예선에 나가는' 해프닝까지 벌였으니 .
여담인데 , 우리 동네 슈퍼 아저씨는 아주 무뚝뚝하게 생겼다 . 그리고 실제로도 말이 거의 없다 . 노래자랑 해프닝이 지난지 한달 후 , 난 슈퍼 아저씨를 길에서 마주쳤다 . 평소 무뚝뚝한 아저씨이니 '안녕하세요 .' 라며 인사만 하고 지나가려는데 그 아저씨가 나를 부른다 .
"야 ."
"… 네 ?"
이어 슈퍼 아저씨는 평소의 무뚝뚝한 표정으로 말했다 .
"… 너 전국 노래자랑 나갔다가 2차에서 떨어졌다며 ?"
… 나는 아직도 동네에서 '전국 노래자랑' 으로 통한다 .
그 시기에 '양치질' 의 뮤직비디오가 완성이 되었다 . 작업 의뢰는 물론 돈 떼어먹히기 전에 한거라 의뢰할 당시에는 걱정이 없었다 . 부산 공연이 끝난 후 출연료를 받으면 그 돈으로 뮤직비디오의 제작비를 주면 만사 오케이일거라고 생각했으니까 .
근데 출연료를 떼먹힐줄 , 그 누가 예상이나 했을까 .
제작비를 지불하기로 약속한 기일은 이미 한참이나 지났고 , 제작사와 통화해서 현재 사정을 이야기하며 기한을 미뤄달라 앵벌이 멘트를 날릴수도 없으니 . 게다가 그 당시엔 대장도 학교 때문에 출국해있었고 , 진우와 현아 모두 학생이었다 . 그리고 나도 가난한 월급쟁이였다 .
매일 매일 돈 걱정때문에 한숨만 쉬는 나날이었다 . 가진 물건을 팔자니 돈 될만한 물건이 없고 , 친구들에게 돈을 빌리자니 가오 때문에 약한 소리 할수도 없고 , 집에 손 벌리는 성격도 아니고 .
그러던 어느 날 , 볼일이 있어 읍내에 나갔다가 집으로 돌아가려고 마을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와중에 '그것' 이 눈에 확 들어왔다 . 그건 바로 버스에 붙어있던 전국노래자랑 예심을 알리는 광고지였다 . 1등 상금이 농산물상품권 100만원 . 상품권 매입업체에 상품권을 판다해도 뮤직비디오 제작비는 다 지불할만큼의 돈을 받을수 있을 터였다 .
… 어지간해선 난 그런 감 따위는 믿지 않지만 , 이건 마치 하늘이 내게 준 기회같았다 . 그것도 아주 시기적절한 .
예심날짜가 다가왔다 . 예심에서 어떤 노래를 불러야 할까 , 고민은 길지 않았다 . 사미인곡 . 젊은이들과 꼰대들 모두를 아우를수 있는 선곡이었다 . 실제로 만족을 모르는 우리 아버지는 내가 노래방에서 이 노래를 부르는걸 듣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올리기도 했었으니까 . 선곡까지 하고나자 점점 자신감이 늘어만 갔다 . 숨겨진 조력자의 기를 받고 있는 느낌이었다 .
예선날의 아침이 밝았다 . 평소와 다름없이 외출하는 척 집을 나섰다 . 집에는 물론 전국노래자랑 예선을 보러나간다느니 따위의 말은 하지 않았다 . 첫번째 이유는 부모님이 응원온다고 할게 뻔했기 때문이고 , 두번째 이유는 어쩐지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
예선하는 곳에 도착하자 수많은 인파가 눈에 들어왔다 . 이 좁디좁은 촌구석 어디에 사람이 이렇게 많이 짱박혀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사람이 많았다 . 조심스럽게 두리번거리니 다행히도 내가 아는 사람은 눈에 띄지 않았다 .
한명씩 차례차례 무대에 나가 노래를 하기 시작했다 . 한명당 1분 사이에 당락이 결정되었다 . 구경꾼들은 그때마다 폭소를 일으키기도 하고 탄식을 내뱉기도 했다 . 예선을 보러 온 사람들의 수준과 심사위원들의 왔다갔다하는 심사기준을 어림잡아 평균을 냈을때 나는 꼭 합격일것 같았다 .
한시간 반정도 시간이 지나고 내 차례가 되었다 . 무대에 올라가서 보니 구경꾼만 세도 200명은 족히 되어보였다 . 긴장은 별로 되지 않았다 . 날 응원하러 온 사람도 없고 날 아는 사람도 없기 때문에 .
무대에 올라가자마자 간단하게 인사 정도만 하고 우렁찬 목소리로 노랫가락을 뽑아냈다 . 여태까지 탈락한 사람들의 문제점이 무대에서 너무 얼어있었다는 점을 감안해 무대에서 내려와 관객들의 앞을 여유있게 지나가며 노래하는 모습까지 보였다 .
1절의 반도 부르지 않았는데 심사위원이 기분좋은 목소리로 합격을 외쳤다 . 구경꾼들은 내 합격에 환호하진 않았지만 대신 객석엔 작은 술렁임이 있었고 여기저기서 작은 목소리로 '노래 진짜 잘한다' 라고 말하는걸 , 난 무대에서 내려오면서 똑똑히 들었다 .
이제 겨우 1차 예선을 통과한것 뿐이었다 . 남은 사람들의 존폐 여부가 결정되어야 2차 예선이 진행될터였다 . 무대 뒤 대기실에서 2차 예선을 기다리고 있는데 양복입은 아저씨 한무리가 20대에서 30대 초반 사이로 보이는 여성들에게 일일이 명함을 돌리며 뭔가를 설명하고 있었다 . 알고보니 그 지역 연예인 협회에서 나온것이었다 . 주말마다 노래자랑을 주최하곤 하니 참가하기를 바란다는 내용이었다 . '어디어디 연예인 협회' 라고 쓰여진 명함을 받고보니 피식 웃음이 나왔다 . 난 비록 무명이긴 하지만 일단은 가수인데 , 연예인 협회에서 명함을 받다니 . 하긴 그렇게 생각하면 노래자랑도 출전하면 안되긴 하지만 .
2차 예선을 기다리며 2차 예선에서 부를 노래를 고민했다 . 사실 1차 예선에서 불렀던 노래를 그대로 불러도 되지만 , 심사위원 중 한명이 내가 합격된후 날 불러 2차 예선때는 곡을 바꿀것을 권했다 . 2차에선 좀 더 신나는 노래를 했으면 한다는 조언이었다 (물론 이때도 '노래는 무척 잘한다' 는 수식을 빼지 않았다) .
뭔가 내가 노래방에 갈때마다 신나게 불러제끼는 노래가 있었는데 그게 뭐였는지 기억이 당최 나질 않았다 . 친한 친구에게 연락해볼랬더니 연락이 되질 않는다 . 고심고심하던 끝에 '하늘에서 남자들이 비처럼 내려와' 라는 곡이 생각이 나서 그걸로 하기로 결정하고 몇분간 가사를 떠올리며 연습을 했다 . 물론 그 곡은 내가 노래방에 갈때마다 신나게 불러제끼긴 하지만 그 곡이 1순위는 아니었다 . 뭔가 다른 곡이 있었지만 생각이 나지 않아서 결국 그것으로 결정한 것이다 .
2차 예선을 기다리며 담배를 몇가치를 태웠는지 모르겠다 . 시간 죽이는건 너무 힘이 들었다 . 그때 엄마 생각이 나서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 전국 노래자랑 예선을 보러 왔는데 1차 예선은 붙었고 이제 2차 예선을 기다리고 있다는 내용을 전했더니 엄마는 호호 웃으면서 혼자 그런걸 하러 간게 용하다고 , 배짱 좋다며 웃었다 . 나도 따라 웃긴 했지만 사실 별로 웃을 기분은 아니었다 .
2차 예선이 진행되었다 . 내 순서는 참가자들중 중간쯤 되었다 . 이번엔 1차때와는 다르게 약간 긴장이 됐었다는 점을 부인할수 없겠다 . 어찌되었든 출연할수 있느냐 마느냐가 결정되는 Final round 니까 .
내 차례가 왔다 . 이번은 1차 예선때처럼 무반주가 아니었는데 , 내 곡명이 전달되자 엔지니어는 그 곡을 찾느라 약간 헤매는 듯한 모습이었다 . 어찌됐든 곡이 흘러나왔고 무대위에 홀로 서있는 나는 노래를 하기 시작했다 . 여전히 무대 옆에선 심사위원 두명이 치켜뜬 눈으로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
어찌 노래가 끝났는지는 잘 기억이 안 나는데 그 상황은 또렷이 기억이 난다 . 여태까지만 해도 시장통을 연상시킬 정도로 시끄러웠던 객석은 내가 노래를 시작하자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 관객들은 넋나간 표정으로 나만 바라보고 있었다 . 그리고 내 노래가 끝나자마자 장마철 양철지붕에 쏟아지는 빗소리같은 , 커다란 박수소리가 쏟아졌다 . 그리고 1차때의 웅성거리는 소리는 보다 더 커졌다 .
만족스러웠다 . 이제 나는 심사결과 발표만 기다리면 되는 거였다 . 누가 뭐라해도 이 기회는 하늘이 나에게 준 기회 아닌가 .
2차는 1차와 다르게 참가자들의 순서가 모두 끝난 후 심사위원들과 스탭들간의 회의를 거쳐 결과가 발표된다 . 나는 또 다시 바깥에서 남은 참가자들의 차례를 기다리며 수없이 담배를 피워댔다 .
결과발표가 있으니 참가자들은 모두 모이라는 외침에 안으로 이동했다 . 심사위원들은 합격한 사람을 한명씩 호명하기 시작했고 .
그 중에 내 이름은 없었다 .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 허무하지도 , 속상하지도 , 억울하지도 않았으며 심지어 배고프지도 졸립지도 않았다 . 그저 가방을 챙겨 일어서서 그곳을 빠져 나오려는데 , 아까 1차 예선이 끝나고 조언을 해주었던 심사위원이 날 부른다 .
"아 … 이거 진짜 아쉽게 됐네 … 사실은 우리가 아까 회의할때도 고민을 많이 했었어요 . 노래는 정말 잘하는데 , 개인기랄까 … 뭔가 보여줄만한게 없어서 , 노래는 진짜 아까운데 말야 !"
… 그러고보니 1차 예선때 , 양손으로는 배구공을 돌리고 입으로는 탁구공 두개를 저글링했던 아저씨가 있었지 .
"노래를 진짜 잘하는데 … 혹시 가수하고 싶거나 그런 생각이 있으면 지금처럼 계속 노력하는것도 좋겠네 . 아 이거 진짜 아까운데 … 자 , 암튼 오늘 수고했고 … 화이팅 !"
"… 수고하셨습니다 ."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를 타려 정류장까지 걸어가는데 , 이상하게 자꾸 헛웃음이 나왔다 . 길거리에서 혼자 웃는 짓은 드라마같은데서나 많이 나온 , 너무 작위적인 행위라 엄마와 통화를 하며 웃음을 다 토해냈다 . 엄마 , 나 2차에서 떨어졌어 . 그래 , 아쉽게 됐네 , 얼른 들어와라 , 맛있는거 해줄께 .
결국 뮤직비디오 제작비도 날아가고 , 내 손에 남은 것은 이 지역 연예인협회 명함 한장 뿐이지만 그 날 밤은 바람이 참 시원해서 기분이 좋았다 .
그 뒤로 몇 주후 , 난 내 월급으로 제작비를 모두 지불했으며 그에 따라 심각한 경제적 공황상태가 장기지속될 전망이었지만 마음은 가벼웠다 . 그것 역시 내가 뭔가를 시도했다는 점 때문이었다 . 책임을 지겠다는 명목으로 '가수가 전국 노래자랑 예선에 나가는' 해프닝까지 벌였으니 .
여담인데 , 우리 동네 슈퍼 아저씨는 아주 무뚝뚝하게 생겼다 . 그리고 실제로도 말이 거의 없다 . 노래자랑 해프닝이 지난지 한달 후 , 난 슈퍼 아저씨를 길에서 마주쳤다 . 평소 무뚝뚝한 아저씨이니 '안녕하세요 .' 라며 인사만 하고 지나가려는데 그 아저씨가 나를 부른다 .
"야 ."
"… 네 ?"
이어 슈퍼 아저씨는 평소의 무뚝뚝한 표정으로 말했다 .
"… 너 전국 노래자랑 나갔다가 2차에서 떨어졌다며 ?"
… 나는 아직도 동네에서 '전국 노래자랑' 으로 통한다 .
3 Comments:
...언더에서 떼먹고 도망가고 하는일.
생각보다 적지 않은듯 하더라고요.
그와중에 전국노래자랑이라니
...... 왕입니다요 --b
@도모에 - 2007/05/26 20:57
댓글에 목말라하던 담패설님을 위해 댓글 달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씁쓸한 지난이야기 제미있게 읽었습니다.
세상살이는 마음보다 실천하는 행동이 중요하죠
힘차게 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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