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February 02, 2007

그래서 IT 브랜드 명품이다

IT 명품 반열에 오르기 위해서는 한 가지 전제 조건이 필요하다.
바로 남다른 사연과 혼을 담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항상 역사의 현장을 지켜왔다는 이유로 명품 대접을 받는 몽블랑이나 영화 <로마의 휴일>에서 오드리 햅번의 발을 빛낸 명품의 반열에 오른 페라가모처럼 말이다.

hp의 잉크젯 프린터가 명품 반열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듀퐁 피그먼트(Pigment) 잉크 덕분이다.
듀퐁 피그먼트 흑색 잉크는 종이에 스미거나 번지는 특성을 이용해 인쇄하는 일반 잉크와는 달리 진드기처럼 종이 위에 들러붙는 특성이 있다.
이런 잉크 특성으로 인해 hp 잉크젯 프린터의 흑백 인쇄는 레이저 프린터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뛰어난 인쇄 품질을 자랑한다.

그러나 경쟁사 입장에서는 이 피그먼트 잉크가 눈엣가시일 수밖에, 하지만 hp가 듀퐁과 피그먼트 잉크 공급에 대한 독점 계약을 맺은 상태이니 달리 도리가 없었다.
이것이 바로 hp의 잉크젯 프린터가 명품 반열에 오를 수 있게 된 사연이다.

hp의 독주에 제동을 건 것은 엡손이다.
현재 프린터, 디지털 카메라 등 다양한 분야에 진출해 있는 엡손의 모회사가 세이코라는 시계 회사라는 사실을 아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시계를 만들던 세이코는 전자 프린터를 개발해 동경올림픽의 공식 납품업체로 선정된 것을 계기로 가전회사로 거듭나게 된다.
당시 세이코는 전자 프린터(Electronic Printer)의 앞 글자를 딴 EP라는 모델로 시장에서 큰 성공을 거두자 후속 모델의 이름에 EP의 뒤를 이을 후계자, 즉 '아들'이 되라는 뜻으로 'SON'이라는 단어를 덧붙였다.
이것이 바로 'EP의 아들', 엡손이 탄생한 배경이다.

엡손은 높은 dpi(1인치를 구성하는 점의 개수)를 실현한 프린터로 hp에 자신 있게 도전장을 내밀었다.
300dpi급 프린터가 대세를 이루던 시장에 무려 그 3배가 넘는 1,440dpi짜리 제품을 내놓은 것이다.
당황한 hp는 싱가포르에서 dpi는 프린터의 인쇄 품질을 좌우하는 요소가 아니라며 dpi 장례식을 치르는 해프닝까지 벌였지만 고객들이 엡손 쪽으로 옮겨가는 것을 막지 못했다.
그 때부터 지금까지 잉크젯 프린터 시장은 hp와 엡손의 양강 구도로 운영되고 있다.

소니의 바이오(VAIO)는 독특한 디자인에 바탕을 둔 섹시(?)한 마그네틱 몸체로 전세계적으로 이름을 널리 알렸다.
하지만 여기서 '바이오'가 무슨 뜻인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조금 안다는 사람은 'Video Audio Integrated Operation'의 앞 글자를 딴 것이라고 말하겠지만 이 역시 틀린 말이다.

바이오는 텍스트적인 의미보다는 로고와 디자인을 고려해 만든 이름이다.
'V'에서 'A'로 유연하게 연결되는 선은 수학의 사인(SIN) 그래프, 즉 아날로그를 뜻하고, 'I'와 'O'는 디지털 이진수인 '1'과 '0'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절묘하게 섞은 제품이라는 얘기다.
소니는 바이오의 디자인을 PC를 잘 모르는 곳에 맡겼는데, 그것이 오히려 지금까지 보아온 것과는 전혀 다른 개념의 PC 디자인을 탄생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이제 MP3 플레이어 시장의 살아있는 전설이 된 아이리버 역시 디자인에 승부를 걸어 명품 반열에 오른 경우다.
디자인 전문 회사인 이노디자인에 의해 탄생된 아이리버는 다른 MP3 플레이어와 차원을 달리하는 세련된 디자인으로 업계 정상을 차지하며 명실 공히 우리 나라 최고의 IT 명품 브랜드로 자리매김했다.

지금까지 살펴보았듯이 명품은 어느 날 우연히,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남들과 다른 생각과 사고의 전환으로 브랜드에 혼을 담을 때 비로소 명품이 완성되는 것이다.
IT 브랜드에도 분명 명품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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